저는 그저 무하마드 알리 (Cassius Marcellus Clay)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설의 헤비급 챔피언으로 알고 있었고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겠다” 라는 명언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EBS 프로를 보고 관련 글들을 찾아 보고 그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그의 일생을 돌아보며 그의 강인한 명언들을 살펴봅니다.
1942년 미국에서도 인종 차별이 심한 캔터기 주 루이스빌에서 태어났고 동네 깡패에게 맞지 않고자 권투를 시작해서 17세에 골든 글러브 챔피언이 되고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땁니다.
고향으로 금의환향했지만 백인 전용 레스토랑에서 노예출신 흑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나자
금메달도 인종 차별과 가난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며
금메달을 허드슨 강에 던지며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지 않겠다” 라고 했습니다.
1964년 2월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고 이슬람으로 개종 후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노예로 태어날 때 주인의 성을 딴 이름인 “캐시어스 클레이” 라는 이름을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습니다.
이런 개명을 미국 매 보수 세력이 못마땅하게 생각해 그에게 월남 참전 징집 명령을 내렸지만
“베트남은 우리 흑인을 공격하지 않았고 아무런 원한이 없다. 흑인의 인권마저 보장해주지 않는 미국이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느냐”
며 징집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그는 타이틀뿐만 아니라 권투 선수 면허도 정지되었습니다.
3년 5개월의 법정 투쟁 끝에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그는 이미 32세 노장 선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주위의 은퇴 권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40연승을 달리던 24세의 조지 포먼을 누르고 두 번째로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됩니다 (1974년).
이때 그가 한 말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입니다.
그 이후 젊은 포먼과의 재대결을 앞두고 “나는 복싱보다 위대하다” 라는 말로 자신감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1978년 형제 복서인 레온 스핑커스에게 패해 타이틀을 내주었지만 재대결해서 다시 한번 세계 챔피언이 됩니다. 세계 최초로 세계 챔피언을 세 번 복귀한 것입니다.
통산 성적 61전 56승(37KO) 5패(1KO) 세 번의 세계 챔피언 복귀
지금까지는 세계 최고의 권투 선수로써의 알리이야기 였습니다.
이후 알리는 권투로 머리에 손상을 받아 1984년부터 파키슨씨 병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병으로 떨리는 손과 뒤틀어진 몸도 그의 강인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에 성화가 도착하자 관중의 환호성은 울려 퍼졌습니다.
최종주자의 손에 성화가 건네졌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한 성화의 마지막 주자는 살이 늘어지고 초점 없는 눈과 쉴새 없이 떠는 손을 가진 중년의 장애인이었습니다.
뒤틀어진 몸으로 겨우겨우 성화를 점화한 것은 그 광경으로 전 관중을 기립 박수를 하게한 이는 바로 무하마드 알리였습니다.
그는 장애을 극복하기 위해 투지를 발휘했고 선수 시절 벌어들인 돈으로 대학과 뜻있는 단체를 후원하며 세계 빈곤국과 장애인 지원사업에 앞장섰고 여러 자선행사와 봉사활동 참여, 사회빈곤층과 장애인들에게 열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퍼트렸다.
이런 그의 활동이 알려졌는지 2005년, 그는 유엔 평화상을 수상합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복서이고 최고 인품의 스포츠맨인 그는
“나는 모든 이의 권리를 존중하는 유머 있는 흑인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또, 자유와 정의, 평등을 위해 싸운 인간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흑인이면서 장애인인 내가 희망의 끈을 높지 않고 싸워온 것처럼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맞서 승리하길 바랄 뿐입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성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당신들께 영감을 주었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Ref
- 무하마드 알리 인물 정보


